전쟁 중 러시아의 선택,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전쟁 중 러시아의 선택,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4.03.1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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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15~1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87.2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rbc 등 현지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개표를 완료한 결과, 푸틴 대통령이 87.2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위는 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4.31%)가, 3위 새로운사람들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3.85%), 4위 러시아자유민주당 레오니트 슬루츠키(3.20%) 순이다. 투표율은 77.44%.

중앙선관위는 21일 공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대선 관련 수치가 바뀔 일은 없어 보인다.

각 후보들의 득표 현황/사진출처:스트라나.ua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시비는 무의미하다. 민주주의의 후발주자이지만, 가장 민주적이라는 미국도 특유의 선거제도 때문에 2020년 대선이 끝난 뒤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렸다.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이 폭력적으로 의사당에 난입했고, 트럼프 전대통령은 이를 부추겼다는 혐의로 대선 후보 자격이 도마위에 올랐다.

◇ 전쟁의 역설?

주목할 것은 투표율과 푸틴 후보의 득표율이다. 둘다 러시아 대선 역대 최고치다. 특히 투표율이 70%를 넘긴 것은, 1991년 소련 붕괴 뒤 치러진 첫 대선(74,66%) 이후 처음이다.

한마디로 '전쟁의 역설'이다. 대선 이슈 중 하나가 반전(反戰)이고, 다른 하나가 옥중에서 사망한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저항 정신 잇기'였다. 정상적인 대선을 방해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잇딴 드론·미사일 공격과 국경 마을 습격은 '반전 효과'보다는 투표율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17일 정오(낮 12시)에 투표소로 모이라'는 나발니 측근들의 '푸틴 저항 캠페인'은 지지자가 몰린 만큼 투표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80%를 훌쩍 넘긴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다. 대선 이전부터 친(親)정부는 물론, 독립적인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조사 결과도 푸틴 지지율이 80%를 넘겼다. 전쟁이라는 위기에 처한 국민의 안정 희구 심리가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또 전쟁 중에 치러지는 투표가 평상시와 같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도 사흘이라는 긴 투표 기간이, 전선에서 투표해야 하는 수십만명의 군인및 예비군들이, 최근 연방에 편입된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서 처음 실시되는 투표가, 처음으로 도입된 전자투표(인터넷) 제도가 '공정한 선거'를 담보하지 못하는 요인들이다. 또 화염병 투척과 기표소 방화, 투표함 훼손 등 투표 방해 사건도 잇따랐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3월 중에 대선을 치러야 했던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전시중 선거'에 반대한 이유다. 특히 전쟁중 보완적인 투표 방안으로 제시된 전자투표에는 응답자의 65%가 '부정 선거'의 위험이 있다고 답변했다.(키예프 사회학 국제 연구소·KIIS 조사)

투표소내 기표소가 불타는 장면/텔레그램 영상 캡처

러시아의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미국 등 서방측에서도 이같은 불가항력적 요인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스트라나.ua는 18일 하루를 결산하는 기획기사 중 '우크라이나의 공격과 러시아 대선' (Удары Украины и выборы президента РФ) 코너에서 "서방 관리들은 양면적인 입장을 취했다"며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이번 대선 이후 러시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독일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푸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필요하다면 푸틴 대통령과 협상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 서방 언론들의 평가

이 매체가 전한 서방 언론의 논지는 두가지다. 푸틴 대통령은 중요한 정치적 경쟁자가 단 한 명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선거 자체가 불공정했다는 점과, 어떤 상황에서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가장 높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스트라나.ua가 전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의 언론 보도를 보면, 
△ 영국 로이터 통신 : 푸틴 대통령은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며 권력 장악력을 더욱 강화했다. 이번 대선 결과는 서방 측이 앞으로 몇 년간 전쟁이든 평화든 러시아와 대결해야 한다는 신호가 될 게 분명하다. 

△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 푸틴 연임의 허상은 '시위'(사태)로 부각됐다. 개표 결과는 실제로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 수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 파이낸셜 타임즈(FT) : 푸틴 대통령은 가혹한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했다. 

△ 미 뉴욕타임스(NYT) : 대통령 선거를 통해 푸틴 대통령은 권력 장악력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에서 새로운 동원령이 발표될 수도 있다. 

△ 독일 빌트지 : 푸틴 대통령은 '권력 유지' 작전(대선) 이후, 반체제 인사들의 대량 체포와 저항을 억누르는 새로운 법안, 부자에 대한 세금 인상 등을 계획하고 있다. 

△ 프랑스 르 몽드 : 크렘린 주인이 이례적으로 높은 득표율로 재선됐다.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 오스트리아 스탄다르트(Der Standard) : 서방 세계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는 푸틴과 새로운 초강대국 러시아와 함께 살아야 하고,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 푸틴과 협상해야 할 것이다. 

△ 네덜란드 누(Nu.nl) : 러시아 국민의 대부분이 실제로 푸틴을 지지한다. 그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기 때문에 추진할 힘이 확고해졌다". 지금의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신호다.

◇ 해외 체류 유권자들의 반란표?

재미 있는 것은 해외에서 체류하는 러시아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다. 나발니 측의 '정오 시위' 호소에 예상외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체류중인 국가의 대사관에 설치된 투표소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반푸틴 투표 성향이 뚜렷한 곳이 적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과 만나는 대선후보들. 위 사진 오른쪽이 다반코프 후보/사진출처:크렘린.ru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해외 체류 러시아인들의 선택은 '새로운사람들'당의 다반코프 후보였다. 러시아 반정부 매체인 메두자(Meduza)는 중앙선관위 자료를 인용해 △바르샤바: 다반코프(51.01%), 푸틴(19.78%) △프라하: 다반코프(59.89%), 푸틴(15.68%) △헤이그: 다반코프(56.88), 푸틴(15.22%) △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다반코프(39.22%), 푸틴(29.74) %) △(이스라엘) 하이파: 다반코프(40.82%), 푸틴(33.93%) △(아르메니아) 예레반: 다반코프(49.85%), 푸틴(32.87%)  등에서 다반코프 후보가 푸틴 후보를 눌렀다고 전했다. 서울의 경우는 푸틴(41.47%), 다반코프(39.65%)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반코프 후보는 그러나 대선 후보 등록이 좌절된 반푸틴, 반전 야권세력의 보리스 나데즈딘과는 공약에서부터 차이를 보였다.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통한 전쟁의 조기 종식을 주장했지만, 점령지역의 우크라이나 반환을 거부했다. 그는 "점령지역 반환이 아닌 우리(러시아)의 조건에 따라 협상하고 평화를 이룩해야 하며, 러시아를 독립적이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 푸틴 대통령의 향후 노선은?

푸틴 대통령은 1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병합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과 노보로시야(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가 고국으로 오는 길이 어렵고 비극적이었지만, 우리는 해냈다”며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로 이어지는 철도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크림대교가 아니라, 새 영토를 통해 세바스토폴로 가는 길을 열겠다"며 이같이 약속했다.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도 좁게는 러시아 본토에서 크림반도로 가는 육로 확보가 주요 목표였다.

그는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州)의 주요 도시인 도네츠크와 마리우폴, 베르댠스크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복원됐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이 작업을 계속해 기차가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까지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8일 모스크바서 열린 크림반도 병합 10주년 기념 콘서트/사진출처:크렘린.ru

앞서 그는 전날(17일) 대선 캠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나토(NATO)의 직접 충돌은 세계 3차대전에서 딱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라며, "그 누구도 이 시나리오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최근 우크라이나 파병론과 러시아와 나토간 충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이 같이 답변했다. 또한 "나토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고 있으며, 러시아 군인들이 전선에서 영어나 프랑스어가 쓰이는 것을 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의 수감 중 사망에 대해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항상 슬픈 일이다"라고 반응했다. 그가 나발니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그 사람", "블로거" 등으로 칭해왔다. 또 사망 직전 (독일 측과의) 수감자 교환 협의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서방 국가에 수감된 러시아인과 나발니를 교환하자는 제안이 있었다"면서 "나는 동의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교환 뒤 나발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거기(유럽)에 있어야 한다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나발니 지지자들의 '정오 시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면서도 "투표 참여를 촉구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을 향해 "오늘 우리 전사들에게 특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하르코프(하르키우) 지역을 점령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크라이나측의) 공격이 계속되면, 더 많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완충지대를 만들어서 러시아 영토를 방어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국경 지대에는 약 5천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이 있으며, (공격시 마다) 큰 손실을 입고 있다"며 "그 절반은 키예프(키이우)로 넘어간 러시아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이 사용하는 외국산 무기로도 (우리 땅에) 도발하기 매우 어렵도록 보안 구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지는 않았다. 

현재 전황에 대해서는 "러시아군이 점진적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일 전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측의 '올림픽 휴전' 제안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러시아의 이익과 전선 상황에 따라 이를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악화시키는 것을 그만두고, 평화를 찾는 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며 "프랑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그동안 누차 말했지만, 우리는 평화 협상 준비가 돼 있다"며 "그들이 1년 반에서 2년간 재무장을 위한 휴전이 아니라 정말 두 국가 사이에 평화롭고 좋은 이웃 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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