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러시아정교회, 콘스탄티노플의 권위 인정않겠다
뿔난 러시아정교회, 콘스탄티노플의 권위 인정않겠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10.16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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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우크라이나정교회 독립 인정에 러시아정교회 "폭발"
러-우크라 정치적 분란이 '정교회 대분열'로, 정교회는 세 위축 자초

러시아정교회가 뿔났다. 러시아정교회는 그 뿌리가 그리스도 3대 교파중 하나인 정교회(동방정교회)에 있다. 산하에는 우크라이나정교회를 두고 있다. 세력은 세계 정교회 내에서 가장 컸다. 약 2억6000만명의 정교회 신자 중 러시아정교회 신자가 1억명, 최대 1억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내전으로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분란은 이제 러시아정교회와 우크라이나정교회를 둘로 갈라 놓았다. 특히 러시아정교회가 우크라이나정교회의 독립을 인정한 동방정교회 총대주교와도 단절을 선언하는 바람에 세계 정교회는 '1천년만의 대분열'로 치닫고 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1054년 교황의 수장권 인정을 두고 벌어진 '대분열'(Great Schism)에 이어 두번째로 기록될 전망이다.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왼쪽)와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우스 1세. 사진은 러시아 언론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정교회는 15일 전 세계 정교회를 대상으로 영적인 최고 권위를 행사하는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 총대주교구와의 모든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러시아정교회는 이날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주교회의(시노드)를 열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의 우크라이나아정교회 독립 인정은 불법"이라고 선언한 뒤 "모든 관계의 단절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러시아 정교회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의 관계 전개를 큰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고,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정교회의 결정은 자기 고립으로 가는 길"이라며 실망감을 표명했다. 

전 세계에 약 3억 명의 신도가 있는 (동방)정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 조직인 (로마)가톨릭과는 달리, 러시아 그리스 루마니아 등 14개 독립교회로 구성된다. 독립교회의 수장은 모두 동등하지만, 이스탄불 소재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사실상 '첫째'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러시아정교회는 14개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하며, 소속 수도자들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산하 수도원에 보내왔다.

실제로 러시아정교회는 지난 2016년 정교회 14개 독립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인 회의에 '의제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불참, 회의를 파행 위기로 몰고 가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는 “몇몇 독립교회들이 여전히 크림 병합을 비난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러시아정교회의 이번 단절 선언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시노드가 지난 11일 러시아정교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정교회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면서 비롯됐다. 17세기에 러시아정교회 산하로 편입된 우크라이나정교회는 1991년 구소련의 붕괴후 러시아정교회로부터 분리를 선언하고, 정교회 교회법에 따른 독립교회 자격 획득을 시도해 왔으나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그 시도가 27년만에 달성된 셈이다. 우크라이나정교회의 독립 결정에 우크라이나는 오래 기다린 '역사적 사건'이라고 환영했으나, 러시아정교회 측은 "거의 1천 년만에 온 최대 분열이자 재앙"이라고 개탄했다.

시노드를 주재하는 바르톨로메우스(가운데) /사진 출처 : Православие.Ru
러시아정교회 주교단과 환담하는 푸틴대통령/ 사진출처: 크렘린

 

양측의 갈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정치적 대립에서 시작됐으나,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분리주의자들 봉기를 지원하자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정교회가 동부 지역의 무장 분리주의 세력을 옹호하는 등 나쁜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비난해 왔다. 

러시아정교회는 이번 우크라이나정교회의 독립 결정으로 세 위축이 불가피하다. 다만 러시아정교회 산하에 있던 많은 교회가 우크라이나정교회 산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충돌마저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내 약 1만2000개의 교회는 러시아정교회 전체 교회수의 3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이 교회들 외에, 2개의 정교회 분파가 더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에 독립한 우크라이나정교회를 포함해 3개의 분파가 하나로 뭉칠지 여부도 관심이다. 

러시아정교회 시노드 사진출처:
러시아정교회 시노드 사진출처: church.by

 

앞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은 지난 11일 바르톨로메우스 1세(러시아어로는 바르폴로메이) 총대주교 주재 아래 사흘간 시노드를 열고 “우크라이나 교회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1686년 이후 러시아정교회가 행사해온 키예프 대주교 임명권을 박탈하고, 우크라이나정교회의 3대 교파 중 비합법적인 키예프 교회(키예프 총대주교좌 우크라이나정교회)를 합법화했다. 러시아정교회의 힘을 확 빼버린 것이다. 

이같은 결정에는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 사이의 뿌리 깊은 알력이 배후에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이후, 모스크바는 ‘정교회 세계의 수호자’ ‘제3의 로마’를 자처했다. ‘제2의 로마’라던 콘스탄티노플이 무너졌으니, 이제 우리가 정교회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슬라브 민족 통합 노력도 큰 타격을 받았다. 올해 초 한 수도원에서 얼음물 침수 세례를 받은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정교회 신앙을 슬라브 민족 정체성으로 앞세우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같은 나라를 한 울타리 안에 가두려 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기념하는 크렘린 연설에서 키예프를 “모든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988년 정교회를 국교로 도입하면서 세례받은 곳이 키예프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정교회는 앞으로 '마이 웨이'할 것이 분명해졌다. 우크라이나정교회는 그동안 모스크바의 지휘를 받은 우크라이나정교회, 키예프 교회,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 등 크게 3개 교파로 나뉜다. 그간 세계 정교회는 모스크바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만 합법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에 합법으로 인정받은 키예프 교회는 앞으로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를 병합한 뒤 모스크바 산하 정교회까지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우크라이나정교회'의 틀을 만들 계획이다. 키예프 교회 수장인 필라레트 대주교는 “분열된 우크라이나정교회가 독립적인 하나의 교회로 단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콘스탄티노불의 결정을 환영했다. 한 통계를 보면 우크라이나 4,500만 인구 중 키예프 교회 신자 비중은 2013년 18.3%에서 지난해 28.7%로 커진 반면 모스크바 산하 교회 교세는 19.6%에서 12.8%로 줄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반 러시아 감정이 폭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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